※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오늘은 시간도 남고 해서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을 봤다. 제목이 공룡일기 였나.
보고 나서 머리 속에서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은 아래와 같다.
단점
1. 영화의 포인트를 알기 힘들다
2. 짱구라는 캐릭터가 이상하다
3. 낮은 개그 타율.. 무리수가 남발된다
4. 전개가 불친절하고 뻔뻔하다
5. 도대체 누구 보여주려고 만든 영화인지?
장점
1. 뛰어난 그래픽과 액션
2. 공룡이라는 사기 소재
내가 단점을 장점 위에 쓴 건 개인적으로 단점이 더 크게 와닿은 영화라서 그렇다.
아래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보자.
단점 - 영화의 포인트를 알기 힘들다
먼저 말해두자면 나는 짱구 극장판 시리즈를 잘 모른다.
그냥 옛날 시리즈들만 좀 챙겨보고 최근 나온 건 거의 안 봤다.
가장 최근 본 게 넷플에 있길래 본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 편이다.
나는 짱구 극장판 시리즈에 이해가 깊지 않다.
그래서 오늘 영화를 보고 짱구 극장판이 원래 이랬었나 하고 당황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짱구가 애기 공룡을 줍는데 그게 연구소에서 탈출한 공룡이어서 그걸 되찾으려는 악당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줄거리만 들으면 짱구와 애기 공룡과의 관계가 메인 포인트인가 싶지만 전혀 아니다.
나도 짱구와 애기 공룡의 관계가 영화의 키포인트라고 착각했었는데,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되는 초중반부터는 짱구와 애기 공룡한테 초점이 안 맞춰진다.
대신 공룡을 현대에 복원시키려는 악당과 그 자식들 간의 갈등이 조명을 받는다.
인정 욕구에 미쳐 공룡 기계들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아버지와 자신들의 꿈을 무시하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자식들.
짱구와 애기 공룡의 이야기는 별로 무게감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당황시킨 건 영화의 최종 결말에는 짱구와 애기 공룡의 이야기를 가져다 쓴다는 점이다.
애기 공룡이 짱구를 위해 희생을 하고 그 장면이 엄청 감동적인 것처럼 연출되는데 개인적으론 다소 당황스러웠다.
초중반부터 짱구와 애기 공룡의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어두더니 결말부에 갑자기 똬앟 하고 꺼내다 쓰는 게 좀 갑작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말이 상당히 감동을 요구하는 장면이었는데 문제는 빌드업이 부족해서 감독의 의도대로 감동하기 힘들었다.
굵게는 이런 점들이 영화가 난잡하다고 생각되는 요인이지만 이 외에도 자잘하게 몇 가지가 더 있다.
예를 들면 애기 공룡이 특정 공룡 기계가 부서지는 걸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하는데 정작 그 부서진 공룡 기계와 무슨 관계인지는 묘사가 안돼있는 점.
또 초반에 악당 측의 인물로 남녀 3명이 서핑보드를 타고 꽤나 요란하게 등장하는데 한번 나오고 재등장하지 않는 초단역이었다는 점 등등.
이런 사소한 점들도 영화가 난잡하다고 느끼게 하는 요인이었다.
단점 - 짱구라는 캐릭터가 이상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유독 짱구가 아이답지 않게 나온다.
이상한 옷을 입거나 장난을 치는 건 똑같지만 단지 그뿐.
사고를 친다거나 말썽을 부리는 등의 아이스러운 면모는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 짱구라는 캐릭터에 의문을 가장 크게 느낀 게 악당의 딸이 짱구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딸이 자신의 꿈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짱구에게 털어놓자 짱구는 아주 짧게 "하고 싶은걸 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악당의 딸은 자기 밥벌이를 하는 성인이고 짱구는 5살 어린이다. 누가 봐도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물론 짱구가 벌써 몇십 년도 넘은 캐릭터고 이젠 내면적인 성장을 그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성되어 있는 건 안다.
하지만 활약을 하던 조언을 하던 그건 어디까지나 어린이라는 포지션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짱구가 조언을 하더라도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어린이의 관점에서 말을 하고 어른이 그 말에 신선한 감명을 받는 식으로 진행한다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라는 다소 무거운 고민을 가지고 짱구가 거기에다가 "하고 싶은걸 하라"고 딱 한마디만 던지는데 관객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 장면 외에도 짱구가 애기 공룡한테 상처를 입는데 이때 짱구가 아빠한테 쥰내 비장한 표정으로 "그냥 구른 거다"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짱구의 진지한 표정을 본 아빠 역시 남자의 표정으로 모른 척해주기로 하는데 이게 개그가 아니라 진지한 장면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짱구의 엉뚱함과 천진난만함을 유독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았다.
단점 - 낮은 개그 타율.. 무리수가 남발된다
영화 안에 무리수가 남발을 한다.
개그 영화다 보니까 개그를 쳐야 하긴 한데 문제는 개그들이 너무 무리수다.
이런 건 개인차가 큰 데다 개그가 재미없는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무리수 개그는 리스크를 동반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고려하지 않고 무리수로 떡칠을 해놨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드가 맞는다면 최고의 영화겠지만 무리수가 통하지 않으면 인식은 바닥으로 처박을 테니까.
나는 무리수 개그 열개가 나왔을 때 그중 한번 정도 피식했고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인식이 좀 많이 안 좋다.
무리수 개그가 열받는 점은 영화의 진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중에 훈이랑 공룡들이 섹시 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3분 정도를 땜빵하는데,
이게 스토리 전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
그냥 춤 다 추고 어 위험했다 계속 가던 길 가자 하고 끝이다. 비유하자면 유튜브 3분짜리 중간 광고 같은 거다.
장르 특성상 아무리 현실성은 개나 줬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무리수 장면이 남발되기 때문에 나처럼 개그 코드가 맞지 않는 관객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단점 - 전개가 불친절하고 뻔뻔하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제작진 쥰내 뻔뻔하네 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뻔뻔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전개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악당이 짱구가 보호하고 있는 애기 공룡을 추격하는 이유가 이 애기 공룡만이 기계가 아닌 진짜 살아있는 공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기 공룡이 후반부에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장면에서 혼자서 빌딩만한 거대 로봇을 반파시킨다.
참고로 애기 공룡의 크기는 짱구랑 흰둥이와 엇비슷한 정도다.
그 정도 크기의 공룡이 갑자기 눈이 벌게지면서 레이저빔을 뿜어내는 로봇을 발차기로 부숴버린다.
이 장면이 기존의 짱구 영화들처럼 코믹 유쾌하게 그려지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심각한 BGM과 함께 나온다.
내가 좀 어이가 없던게 애기 공룡이 왜 쥰내 쎈지에 대해 설명이 안 나온다는 점이다.
혹시 '공룡=대단함 → 살아있는 공룡=레어함 → 대단하고 레어함=쥰내 쎈게 당연' 이런 흐름으로 애기 공룡의 전투력이 측정된건 아닐까?
애기 공룡의 전투력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니까 짱구 머리 위로 떨어진 빌딩(벽돌 쪼가리가 아니라 정말 빌딩이 통째로 떨어진다)을 애기 공룡이 들어올려서 구해줄 때 "와... 감동" 이런 반응보다는 "??? 뭐임?" 이렇게 반응해버린다.
그리고 애기 공룡의 희생에 짱구가 엉엉 울며 관객들한테 노골적으로 신파를 시전해도 그런 신파가 먹힐 만큼의 빌드업을 쌓지 않아서 의도한만큼 감동으로 다가오기가 힘들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뻔뻔한 게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기 위해서 제작진들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갑자기 그림체가 굵은 고딕체로 변하고 흰둥이가 왕 우니까 드론식 줌아웃 연출 나오고 BGM 막 웅장하고.
내가 보기에는 이런 연출을 할 만큼 애기 공룡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애기 공룡의 스토리보다 중요하게 다뤄졌던 게 악당과 그 자식들의 갈등인데 정작 이 문제는 깔끔하게 매듭짓지도 않는다.
여러모로 선택과 집중에 아쉬움이 드러나는 영화다.
단점 - 도대체 누구 보여주려고 만든 영화인지?
그동안 짱구의 극장판 시리즈가 사랑받은 이유는 가족 영화로서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요소가 공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짱구 시리즈는 위에서 상기한 단점들로 인해 혹시 가족 영화가 아닌 아동 영화로서 포인트를 맞춘 건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다.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공룡이라는 소재, 좀 억지여도 일차원적이고 직관적인 개그들.
어른이라면 호불호는 갈릴지는 몰라도 애기들한텐 무난히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혹시 아동에 타깃을 잡은 영화라면 할 말이 많다고 봤지만, 문제는 그러면 결말이 납득이 안 간다.
한국 영화는 양말도 스치지 못할 지독한 신파, 메인 캐릭터의 죽음이라는 충격적 전개,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끝나는 씁쓸한 엔딩... 도저히 아동 영화에 나올 요소들은 아니다.
음. 아동용 영화인지 가족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제쳐두자.
그보다 앞서 정말 이런 결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부터 짚어보고 싶다.
역대 짱구 영화들 중에 비극으로 끝난 결말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다 그 이유를 납득시켰다.
예시로 로봇 아빠 편에서는 그 영화가 다루던 주제를 생각하면 해피 엔딩은 말도 안 되는 거고 대신 엔딩을 통해 관객들한테 많은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극적인 연출 뒤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부모와 아이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초반에 잠깐 등장했던 인간과 공룡의 공존이라는 주제도 어느샌가 흐지부지되어 사라졌다.
메인 캐릭터의 죽음이라는 강수를 뒀으면 거기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 있을 텐데 그게 뭔지 도저히 못 찾겠다.
찾아보니까 일본 현지에서도 엔딩 때문에 말이 많은 것 같긴 했다.
애당초 애기 공룡의 죽음이 논란이 되는 건 영화의 흐름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주제 의식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장점 - 뛰어난 그래픽과 액션
위에서 너무 쓴소리만 했지만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일단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액션이 눈에 띈다.
그래픽도 역대급으로 업그레이드된 게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공룡 + 기계라는 소재를 합쳤기 때문에 어른 남자도 단순하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곳곳에 많다.
내가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은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 주관적인 비판이지만 뛰어난 그래픽과 연출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이 영화만의 장점이라고 본다.
장점 - 공룡이라는 소재
공룡이라는 소재 자체가 장점이다.
거기에다가 메카닉이라는 장르까지 합쳤으면 이야기는 끝이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인 애기 공룡 캐릭터가 귀엽고 다른 공룡 로봇들에는 박력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 볼 이유는 아마 충분하지 않을까?
다만 좀 꼴 받는 게 애기 공룡한테 깃털이 나있는 거다.
90년대생이라 깃털 공룡에 익숙하지 않아서 헤어스타일처럼 붙어있는 깃털이 좀 열받았다.
그것만 감안하면 디자인에는 딱히 문제는 없다.
사실 오늘 영활관에 지각해서 처음 10분 정도 못 보고 놓쳤다.
딱히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이때 중요한 내용을 놓쳐서 이 영화에 비판적이 된 건가 의심이 든다.
아니면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중요한 대사를 이해 못 하고 놓친 건가?
그렇게 어려운 표현은 없었던 거 같은데...
혹시라도 나중에 넷플에 뜨면 그때 확인해 봐야지.